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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

2017-10-13 17:42:59

집닥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필자가 업무를 파악해 볼 요량으로 과거의 샘플을 찾아 보고 있던 와중, 한 시공사례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제주 월정리에 위치한 35평의 카페 건물. 알루미늄 루바와 브라켓 조명의 조화가 저 멀리에서도 유난히 아름답게 반짝이던 카페였다.

 

 

제주 월정리에 위치한 아름다운 펜션&카페 건물

오션 뷰의 이점을 살려 테라스와 좌석 배치에 공들인 카페를 보며 한 번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샘솟았다. 


그 카페를 만들어 낸 곳이 바로 이로 디자인. 강렬한 첫인상 때문인지 유난히도 그 이름이 기억에 남아 떠돌고 있을 때, 이로 디자인과의 인터뷰가 준비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 저요! 제가 갈 겁니다!!! "

실력도 좋고 포트폴리오도 훌륭한 젊기까지 하고 잘생긴 대표도 있다는 ​이 업체를 만나 볼 기회를 놓칠쏘냐. 부랴부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재차 이로 디자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35살에 내 회사를 만들겠다

고집스레 버틴 지난 날 

칠한 키와 외모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의상, 꽤 긴 머리 두꺼운 프레임 안경 뒤로 대충 넘긴 모습. 

처음 만난 김진규 대표의 첫인상은...뭐랄까, '단단'해 보였다. 자신만의 신념을 고집스레 지키며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해 내는 아티스트같다고 할까. 

 

 

이로디자인 김진규 대표

올해 39살로 썩 젊은 나이인데도, 인생의 굴곡과 방황을 몇 번 거치면서 거칠게 다져진 날카로운 눈빛이 돋보였다. 웬만큼 고집있고 강단있지 않고서야 저런 눈빛을 뿜어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궁금했다. 한 눈에 봐도 스스로의 소신과 고집이 넘치는 그가, 인테리어 업계를 선택해 지금껏 몰두하게 된 계기가 말이다.  

김진규 대표 =
'본격적'인 시작부터 말해야겠죠? 아무래도 99년, 20살 대학 초년생이라 할 수 있겠군요. 전공으로 인테리어를 선택했으니까요. 

사실 그 전에도 관련이 없다 말할 수는 없는 게, 건축가를 양성하는 고등학교에 다니며 건축을 배워왔거든요. 인테리어도 엄밀히 말하면 건축의 일부이니, 따지고 보면 고등학생부터 이 업계에 발을 들일 준비를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축에서 인테리어로 넘어가는 건 당시로선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했다. 그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전공을 뒤바꿀 정도로 인테리어의 무언가에 깊이 매료됐다는 소린데, 이후 나온 대답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김진규 대표 =
에...뭐, 있어 보여서요(...)

그때는 인테리어라는 자체가 굉장히 생소한 문화였어요. 고객도 업자도 인테리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할까요.  

저도 잘 몰랐죠. 그런 제가 보기엔 장식과 예술을 가미해 공간을 가꾸는 인테리어란 업종은 설계와 수학으로 이뤄진 건축보다 더 재밌고 멋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인테리어로 전공을 바꾼 거에요. 사실 수학에 좀 약한 것도 있고요(웃음). 


영어인데다 뭔가 예술적인 작업같아 보였다고(...)

...렷한 소신이 있을 줄 알았던 터라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김진규 대표의 방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인테리어를 하던 도중 불쑥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김진규 대표 =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하며 인테리어 업자로서 첫 발을 내딛긴 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당시 인테리어는 이제 막 국내에 들어 선 단계로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죠. 소위 말하는 '전문성'이 확립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인테리어를 주름잡던 사람들의 대다수는 전문대 출신이 아닌 홍대 미대, 시각디자인 등 4년제 대학의 미술관련 전공자였어요. 예술 감각만 있으면 예쁜 인테리어를 할 줄 알았던 거죠. 

그러다 보니 전문성 대신 학벌만이 평가의 기준이 되었죠. 힘들더라고요. 전문적으로 배웠다 자부하지만 남들은 저를 2년제라고 무시하는 게 뼈저리게 느껴졌고, 그들과 어울리지도 못했습니다. 

뿌리깊은 편견을 이겨내려면 제가 더 배우는 수밖에 없겠다 싶었지요. 그 고민을 지금의 아내와 상의하고 일본으로 훌쩍 떠났습니다. 27살이었네요. 

거기서 교육을 더 받고, 일본 내에서도 인테리어 경력을 더 많이 쌓은 후 다시 들어 올 계획이었습니다.



 일본이었을까. 김진규 대표는 당시 한국에 들어 온 기술이나 자재, 용어는 대부분 10년 전의 일본 인테리어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그 시절 이제 막 떠오르던 인테리어의 역사와 과정을 좀 더 깊이 배우는 한편, 한국 사회의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한 학력 보강의 터전으로 일본을 선택했다는 것. 

김진규 대표 =
그런데, 막상 일본까지 가서 인테리어를 배우진 않았다는 게 함정입니다(웃음). 길을 가다 보니 단독 주택이 너무 예쁘더군요. 그 정갈함과 특색에 반해 주택 건축으로 배움의 방향을 돌렸습니다. 

아이러니하지요. 건축과에서 인테리어로 뛰어 든 사람이, 인테리어를 배우겠다고 기껏 외국에 가서 다시 건축으로 돌아선 게. 

근데 그 선택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줬다 생각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인테리어는 건축의 큰 궤에 있는 하나의 분야거든요. 건축을 잘 알면 인테리어도 그만큼 더 알게 된다는 소리죠. 

이로 디자인이 단순 인테리어를 넘어 건축까지 관여할 수 있는 사업 영역을 갖춘 것 역시 저의 방황(?)이 없었다면 힘들었으리라 봅니다. 


토대구축부터 건설까지 폭넓게 공사할 수 있는 이로디자인의 역량은 젊은 시절 배움의 방황에서 비롯됐다

나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라고, 현재의 상황에서 인테리어와 주택 건설을 배우겠다고 일본으로 훌쩍 떠나는 건 무의미하다고 덧붙였다. 

그 시절이 후회되진 않지만, 본인도 썩 만족스럽지 않다 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화 차이에서 기인한, 시공방식의 궤가 달라졌기 때문이란다. 

김진규 대표 =
지금은 2005년이 아닙니다. 당시 제가 궁금했던 모든 정보는 이제 온라인 상에서 검색 몇 번으로 간단히 찾아 볼 수 있게 됐어요. 

거기다 10년 전에는 생소했던 인테리어도 이제는 대중화 됐습니다. 인테리어를 위한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도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과 한국의 정서는 비슷한 듯하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다릅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각 나라마다 특유의 문화가 있거든요. 이런 문화적 포인트를 한국에 적용하기란 꽤 힘듭니다.  

이를테면 말이죠, 일본의 문화엔 논리와 효율과는 상관없이, 전통의 뿌리로 남겨 두는 곤조(根性)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싹 걷어내고 새로 꾸미고 새로 채우는 인테리어 문화와는 거리가 멀지요.

구태여 인테리어를 배우러 일본으로, 세계로 갈 필요가 있나 싶군요. 한국 안에서도 배움의 기회는 너무나 많습니다. 한국적인 인테리어로 국내 사업을 전개하고 싶다면, 우리나라에만 집중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믿어요. 


일본 인테리어에서 중시되는 전통과 고집, 곤조

나 단호하게 유학을 반대한 김진규 대표지만, 막상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일본에서 배운 점이 아예 없진 않았다. 적어도 인생을 뒤흔들 한 가지는 가슴에 품을 수 있었다.  

"내 이름을 건 회사를 35살에 만들어 내겠다"

김진규 대표 =
주택 디자인 2년을 배우다 학교를 졸업하고 목조주택을 건설하는 회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때 제가 면접장에서 35살에는 회사 차릴 거란 소리를 당돌하게 내뱉었죠. 

그 다짐을 품게 된 건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이었습니다. 당시 야끼니꾸(일본식 화로구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는데요. 

아시다시피 일본은 오픈형 주방이라 손님도 요리사의 행동면면을 관찰할 수 있잖아요. 그 말인즉슨 요리사 역시 손님의 대화를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다는 거죠.


고기 구워주는 도중 언뜻언뜻 들리던 손님들의 이야기

그 곳의 단골고객이 한 분 있었어요. 일본에서 골프채하면 알아주는 회사의 회장님이셨지요. 70세는 훌쩍 넘긴 듯 보였어요. 그 분이 지인과 이야기하며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35살에 처음으로 사장의 명함을 팠다"고.

그 35살이란 단어가 가슴을 때렸습니다. 흘러가는 대로 살기 바빴던 저에게, 목표를 위한 한계선 설정의 중요함이 일깨워진 겁니다. 

이렇게 배우고 일하며 꿈꾸는 최종목표는 어차피 내 이름을 건 회사였는데, 막연하게만 생각했지 정작 언제 이룰지 확정하지 않았던 거죠. 

그 후 저도 제 목표를 35살, 내 회사로 잡았습니다. 목표 시간대를 선택한 후 인생도 좀 더 치열하게 살게 됐었죠. 외국인이라 은근하게 차별하던 와중에서도 제 굳센 목표가 있기에 참을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고 35살이 되자, 전 그간 품고 있던 목표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이로 디자인입니다.


35살에 이룬 인생의 목표, 이로디자인

무모한 시작, 쌓여가는 경험
이로 디자인이 걸어 온 길

리한 컬러 사용이 본인의 장점이었기에 색을 뜻하는 일본단어 いろ에서 따왔다고 한다. 한자로도 '이로울 利에 길 路'라고 좋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니 꽤 괜찮은 이름이었다. 

허나 사업은 이름만 잘 짓는다고 다가 아니다. 

솔직히, 김진규 대표의 선택은 조금 무모했다. 고등학생부터 관련 교육을 받아 오며 업계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지만, 35살이란 나이에 신념만 믿고 덜컥 자신의 사업을 펼치기엔 여러모로 위험하니까.  

김진규 대표 =
하하, 저도 몰랐어요. 그렇게 일이 안 들어올 줄은(웃음).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인테리어 일의 대부분은 지인의 소개로 이뤄지던 시절이었죠. 관련 업계에 꾸준히 몸 담고 있었다지만, 회사에서의 경력도 별로 없고 중간에 외국까지 건너가 경력도 인맥도 애매했던 애송이의 업체에 일을 맡겨 주는 이는 거의 없었어요. 

덕분에 한 6개월 정도 일 없이 놀기만 하던 중 지인을 건너 드디어 첫 일이 떨어졌습니다. 안경원. 80평. 

그래요. 애송이의 첫 프로젝트치고는 너무 크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정도 넓이가 80평이다. 이 드넓은 공간을 첫 일로 받았다니...

일이 80평이라니.첫 작업이 원만히 풀려야 이후의 일거리도 들어온다는 걸 생각하면 어떻게든 80평이란 어마무시한 넓이를 채워 내야 했을 터.  

꽤나 고생했지만, 다행히도 그 어려움을 잘 극복했더랬다. 지금 이로 디자인의 팀장으로 오랜 시간 곁에 머문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과 인테리어에 대한 지식과 경험, 더불어 패기까지 갖춘 두 젊은이는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의논했다고 한다. 

김진규 대표 =
일본 건너가기 전 한국에서 잠깐 회사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찾아 온 친구였는데, 건축학도였거든요. 3D그래픽 처리 능력이 매우 탁월한데다 손까지 빨라서 제가 상당히 눈여겨 보고 있었지요.  

사업 초심자에겐 너무 벅찬 스케일의 일이 들어 오니, 그 동생이 떠오르더라고요. 처음엔 프리랜서만 할 거라고, 회사에 소속되고 싶지 않다던 녀석이었는데도 포기가 안됐어요. 

제가 하도 조르니 마지못해 협업 방식으로 안경원 인테리어를 도와 줬죠. 그렇게 둘이 모여 낮밤 가리지 않고 고민했습니다. 

인테리어는 채움의 미학입니다. 빈 공간을 무슨 자재로 어떻게 감쌀 것인지, 어떤 요소로 공간을 두텁게 채워 낼지 내내 생각해야 하죠. 

경험이 많지 않았던 35살의 저, 그보다 5살은 어린 동생에게 80평을 그 미학으로 다 채우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설계하는 데 꼬박 한 달은 걸린 것 같아요. 이로 디자인의 첫 걸음을 헛딛음으로 망쳐 버리고 싶지 않아 별의별 상상력을 다 동원했었죠. 그렇게 여차저차 두 달을 매달리니 결과는 나름 뿌듯하긴 하더군요.​  


[출처: 영화 라이프오브파이 中] 이 넓은 곳을 어떻게...당시 그들의 심정이었다.

테리어 설계라는 게 그토록 힘든 일인가 물어 보니 그건 또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설계도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창작의 영역이기에, 번뜩 떠올라 순식간에 해치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김진규 대표 =
그 예가 집닥에 업로드 된 제주도 카페에요. 설계하는 데 고작해야 이틀 걸렸어요. 

아이디어라는 놈은 갑자기 생겨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제주도가 딱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번뜩 스치는 아이디어에 집중하니 금방 나오더군요. 

건축과 인테리어 역시 창작의 한 일환이다 보니, 케이스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시간이 천차만별이에요.  



그렇게 설립 4년이 된 지금, 못해도 약 50-60곳의 시공을 진행했습니다. 한 달 평균 한 건 정도입니다. 

한 곳에 공들이는 성향이 강하고 건축과 인테리어가 함께 포함된 의뢰가 많아 작업의 스케일이 큰 편이라 아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사업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잘 풀리고 있습니다. 

멤버도 더 추가됐지요. 올해 29살의 막내가 이로 디자인의 성장을 더욱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아직 차근차근 경력을 쌓는 단계지만, 믿음직스럽습니다. 

이 친구들과 함께 한다면, 앞으로의 일들도 결코 걱정되지 않습니다. 되려 기대되는군요.


5년 전 협업한 동생은 이로 디자인의 팀장으로 남아 탁월한 3D그래픽 능력을 기반으로 각종 공간을 설계한다.
사진은 그의 가상 인테리어 시안. 실사가 아니다. 그래픽이다

지역이 바뀌어도 철학은 그대로
제주도에서의 나날들

주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궁금했다. 분명 사무실과 삶의 터전은 서울에 있는데, 어찌하여 멀고 먼 제주도에 연락이 닿았으며 의뢰를 받게 됐던걸까 싶었다.

김진규 대표 =
사실 당시 제가 제주도에 분양 목적으로 주택을 하나 짓고 있었거든요. 월정리 카페는 뭐, 근처다 보니 겸사겸사 받은 일이었지요.  

첫 직장에 다닐 때 목수 반장님이셨던 분이 있어요. 제가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제주도에서 땅도 사고 집도 지으셨더군요. 

그 분이 제주도는 가치 있는 곳이니 너도 집을 짓고 이웃의 의뢰도 받으라 권유하셨지요. 괜찮다 싶어 집 지으러 내려간 김에 이웃 좀 도와 주게 된 겁니다.


뭐 별다른 특별한 도전 정신으로 제주도를 간 게 아니다(...)

...또 한번 예상을 뒤엎는다. 그 커다란 프로젝트의 시작이 그토록 가벼웠다니...

그러나 공간의 용도에 따른 인테리어 전략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매장과 주거, 각각의 공간에 대한 전략이 굳게 세워져 있었다. 

김진규 대표 =
내부만 바꿔서는 답이 없었습니다. 섬 외곽 구석에 있는 데다 건물도 눈에 띄지 않아 손님이 올까 싶을 정도였어요. 위치적으로도, 외형적으로도 난처한 가게였지요.  

그래서 일단 눈에 띄게 했습니다. 과감한 디자인으로 저 멀리에서도 존재감이 드러날 수 있도록. 

밤에도 그 모습 훤히 빛날 수 있게 알루미늄 루바 외벽과 브라켓 조명을 적극 활용했고요. 여러모로 외형에 많은 공을 들여 작업했어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매장은 톡톡 튀어야 한다고. 멀찍이서 바라 보아도 그 아름다움에 홀려 찾아가고 싶도록 과감한 컬러 사용과 독특한 외형 설계가 이뤄져야 된다고 봅니다.  


(사진 클릭시 해당 카페의 시공사례로 이동합니다)
확연히 달라진 카페. 눈에 띌 수 있는 과감한 디자인으로 승부걸었다

아, 매장인데 내부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곳 있잖아요. 산골 깊숙히 있는데도 손님들이 물어물어 찾아가는 맛집 같은 곳요. 

고객층이 명확하게 형성되어 있고 찾아 가는 불편함을 안고도 방문하는 유명 가게일 경우 내부에 크게 신경씁니다. 고생 끝에 환하고 멋진 인테리어를 즐길 수 있도록 말이지요. 


나쁜 위치라도 유명세를 타 꾸준히 고객이 오는 곳이면
힘들여 방문한 보람을 느끼도록 장식에 신경 쓴다

단, 주거 공간은 머무르는 사람에게 맞춰야 합니다. 호화주택처럼 꾸며 봤자 공간의 한계와 시대의 흐름 속에 빛이 바래지면서 그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머무른다는 공간의 목적에 충실해야 하죠. 

무난하지만 질리지 않게, 어딘지 모르는 심심함 사이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죠.  

그래서 전 주거 공간을 가꿀 땐 화이트 컬러에 모던 컨셉을 주로 선택합니다. 제주도 주택도 외관 전체가 화이트입니다. 

가끔 고객이 굉장히 도전적인 요청을 할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전 금방 질리고 금방 유행에 도태될 우려가 있다는 걸 충분히 고지합니다. 

큰 돈과 오랜 고민 끝에 진행한 인테리어가 1-2년 지나 후회로 남는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잖아요.


자연 속에서 돋보일 수 있도록 화이트로 가꾼 제주도 저택
자연 소재는 포인트로 부분적으로만 사용했다

테리어 감성만 놓고 본다면 제주도나 내륙이나 큰 차이는 없다는 게 김진규 대표의 설명이다. 

다만 제주도 같은 곳에서 작업하려면 꼭 하나 알고 가야 하는 게 있단다. '불편함'의 위험이 어디에나 있다는 걸.

생각대로,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지는 않기에 멘탈적으로 단단히 각오가 되어 있어야 버틸 수 있다고 했다. 

김진규 대표 =
최근 각광받는 휴양지라 이래저래 재건축 들어가는 매장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내로라하는 인테리어 업체에 문의하는 고객도 증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람도 자재도 구하는 게 너무 힘든 동네에요. 한 20% 더 비싸다고 보면 됩니다. 

평화로운 제주도의 정경과 함께 즐거이 일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겠지만, 막상 와보면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너무 힘든 곳이라는 걸.

내륙의 컨디션대로 제주도의 요청을 받으면 분명 주저앉을 거라는 충고를 하고 싶군요.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외성의 여지를 안고 작업을 해야 합니다. 



즐거울 때도, 힘들 때도 있었다 
인테리어의 어려움 

난 4년 간 수십 곳의 공간을 변화시켰던 김진규 대표와 이로 디자인.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애착이 가거나 기억에 남는 곳이 하나 있지 않을까.  

김진규 대표 =
공사 한 번에 짧아도 몇 주가 걸리는 데 그 긴 시간 부딪던 고객과 공간을 잊을 리 있나요. 모두 기억하고 모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디 하나 특별히 애착 가는 곳은... 

각해 보니 하나 있군요. 일산 근방에 카페 하나가 있어요. 휴전선과 가까운, 대놓고 말하자면 찾아 가기 쉽지 않은 곳이죠. 

근데도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요. 원두 볶는 로스터리 카페로 입소문난 곳이거든요. 제가 방금 얘기했던, 접근성 나쁜데도 유명한 맛집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내부 작업에 공을 들였죠. 

내부 뿐만이 아니라 직접 설계하고 건물 토대부터 하나하나 쌓아 올리기까지 했는데요. 

정말 신나게 작업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한다고 신난 게 아니라, 예산이 상당히 넉넉했거든요. 거칠 게 없었지요. 


(사진 클릭시 해당 카페의 시공사례로 이동합니다)
넉넉한 예산으로 건설부터 내부공사까지 죄다 했던 의뢰

농담이 아니라, 인테리어라는 게 그래요. 돈을 들인 그 이상으로 공간의 가치는 높아집니다. 

그런데 솔직히 대부분의 의뢰는 예산이 한정적이니 더 좋은 선택지와 더 기발한 상상력 대신 무난하고 저렴한 쪽을 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적은 예산은 고객이나 시공업체나 포기할 게 너무 많아요. 

예산이 넉넉하다면 시공업체는 그동안 가슴에만 품고 있던 빛나는 아이디어를 인테리어에 반영할 수 있어요. 고객의 선택 폭도 그만큼 더 넓어지고요. 공간을 채우는 요소 하나하나도 더 쓸모있고 더 오래 갑니다.


 

 

랬다. 쪽 업계에서 꽤 오래 버텨 온 그도 예산이란 견고한 벽은 어찌할 수 없었다. 


싸고 빠르게 진행하는 인테리어가 좋다고 믿는 고객들을 설득하느라 적지 않은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김진규 대표 =
그런 적이 있어요. 우리집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아내의 친구가 급히 연락하더군요. 인테리어한 지 1년이 안됐는데 물이 샌다고 말이죠. 

문제점 진단해 주러 방문했습니다. 보니까 아주 가관이더군요. 업체가, 속된 말로 개판을 쳐놨습니다. 배관 결속도 허술하고, 방수 마감처리도 안 되어 있고... 근데 그걸 제가 함부로 건드릴 순 없었습니다.

많이들 인테리어하면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을 바꾼다 오해하는데, 사실 전기 배선이나 배수관 등 내부 공사의 비중도 상당히 높아요.  

 

그 내부는 직접 시공한 사람 아니면 모릅니다. 제가 고치려면 그거 다 뜯어야 하죠. 철거도 다 돈 드는 작업인 건 두말할 것 없고요. 


뜯지 말고 고쳐달라더군요. 그럴거면 시공한 업체에게 직접 연락해야 하고, 내가 하길 원한다면 뜯어야 한다고.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당장의 문제만 해결하면 분명 머지 않아 또 문제가 터질꺼라고 몇 번이나 설명했어요.  

그래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원하는 대로 했어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수선했죠. 결과는 뭐 예상하시겠지만, 얼마 되지 않아 물 샌다고 연락오더군요. 제가 뭐 어떻게 해 줄 도리가 없었죠. 

 

 

사람에게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듯, 

 

공간에게도 화려한 외형보다 단단한 내실이 더 중요하다

 

'고 빠르다'는 건 적어도 인테리어에선 좋은 게 아니다. 몇 년에 걸쳐 수십 곳의 공간을 만져 온 전문가, 김진규 대표의 충고다. 


김진규 대표 =
필수적으로 드는 예산과 시간을 어떻게든 줄이려 애쓴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내부는 상관없이 외관만 예쁘면 된다고 생각하면 얼마 못 갑니다. 꼼꼼하고 세밀한 과정과 넉넉한 예산 투자가 오랜 세월 가치있게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듭니다.  

벽지 같은 디자인 비중이 높은 요소는 고객이 자유롭게 선택해도 되지만, 적어도 싱크대나 상부장, 샤시 등 기능적 측면이 강한 제품은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하고 고르는 게 좋습니다. 

욕조 및 변기, 세면대 같은 욕실 도기 제품이나 타일처럼 지속력과 내구성이 필요한 제품도 마찬가지고요.  

 

꼼꼼한 자체 사전조사와 신중한 협의 없이 무턱대고 업체의 말만 따르면 위험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대충 눈속임 하고 값싼 자재로 속이는 양심 없는 업체도 꽤 있거든요. 


지금 귀에 들리는 허울 좋은 소리가 과연 미래까지도 통할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사진 클릭시 이로디자인의 주거시공사례로 이동합니다)

 

고객과의 충분한 상의로 질좋은 제품을 사용한 주거 인테리어​

 

의 말대로 인테리어엔 적잖은 위험이 도사린다. 소비자 불만족지수 1위. 먹튀나 빼돌리기 사기로 인테리어 업계는 항상 홍역을 앓아 왔다. 

 끊길락말락 위태했던 인테리어의 신뢰도를, 그래도 최근 인터넷 중개 플랫폼이 하나 둘 생겨나며 차근차근 이어나가고 있다는 게 다행이긴 하다. 

이로 디자인 역시 중개 플랫폼 집닥의 파트너스 업체로 활동하고 있다. 자력으로도 충분히 사업이 유지되는데도, 집닥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다

김진규 대표 =
가장 좋은 건 역시 영업의 부담이 덜어졌다는 거에요. 예전엔 스스로가 발품을 팔고 지인을 섭외하며 고객을 끌어들여야 했죠. 

인터넷이 발전해도 비슷했습니다. 블로그나 SNS로 홍보하고,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일거리를 기대했습니다. 그저 입소문이 빨리 나기만을 기다렸죠. 

고객 대응도 항상 문제였습니다. 진짜 사기를 칠 요량으로 잠적해 버리면 모를까, 꾸준히 인테리어 업계에서 활동할 거라면 항상 고개를 숙여야 했지요. 진상 고객이라한들 갈등 관계에서 손해를 보는 쪽은 언제나 업체였습니다. 

이젠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고객과 시공업체의 연결과 대화를 도와주는 중개 플랫폼은 이제 선택보단 필수에 가깝습니다. 그만큼 저희의 부담도 꽤 덜어 냈습니다. 공간의 변화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달까요.  

 

 

(사진 클릭시 ZipTip중개플랫폼 편으로 이동합니다)

다만 인테리어 속에서의 중개 플랫폼 사업은 이제 막 태동한 것과 마찬가지라 봅니다. 

성장 가능성이 많은 대신, 그에 맞춰 더 기술과 운영면에서 발전해야 하겠지요. 시공업체와 공생하는 입장이니 파트너스의 질적 관리도 필수적이고요.  

중개 플랫폼이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차근차근 성장의 스텝을 밟아 나간다면, 분명 인테리어 업계는 과거와 지금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시장으로 거듭날 거에요. 고객과 업체가 서로를 신뢰하는 따스한 업계가 되겠지요.
 
고생을 이겨 낸 애정
인테리어 사랑꾼의 약속
 
은 시공업체가 되기 위해 될 조건은 너무나도 많다. 

전문 지식도 있어야 하고, 자재도 발주하고 직접 세공하는 등 시공 현장을 전두지휘해야 한다. 고객을 상대하고 크고 작은 갈등도 조율해야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굉장히 고달픈 직업이다. 

업계인의 이탈율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간을 바꿔낸다는 멋짐에 반해 발을 딛은 사람들 중 대다수는 예상치 못한 고생에 놀라 화들짝 발을 빼버린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면서도 김진규 대표는 앞으로도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고 싶다 말했다. 

김진규 대표 =
여전히 연락하는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 2명 있습니다. 그 두 명은 저와 다르게 건축과로 대학 진로를 잡았는데요. 지금 그 둘은 건축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배우면서 거쳐갔던 동기동창 중 손가락에 꼽힐 정도만 인테리어와 건축 사업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도포기도 잦고, 포기할 여지가 너무 많은 업계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경력과 관록을 아무리 쌓아도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은 언제나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런 걸 참아낼 수 없다 생각한다면 빠르게 돌아서는 편이 나아요. 한 관문을 억지로 뛰어 넘어도 다른 관문이 힘들게 할 테니까요. 

과정의 힘듦이 결과의 기쁨보다 더 크다면, 앞으로 그 힘듦의 무게는 더 늘어날 거고,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저도 힘들죠. 그런데도 버티는 이유? 보람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만큼 보람찬 일이 어딨겠습니까. 자신의 작품이 전혀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공존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거기다 작은 작품도 아니라 공간입니다. 제 작품 속에서 사람이 머무른다는 거죠.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 자랑 같지만, 이로 디자인이 시공한 매장은 어디 하나 문 닫은 곳 없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여전히 우뚝 서 있는 제 작품을 맞딱드리는 일이 종종 있는데요. 뿌듯하더군요. 우리 아이에게 "저 봐, 아빠가 만든 집이야."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며 괜시리 벅차 오르죠.  

힘들지만 그만한 보람이 찾아 오는 일이 바로 인테리어입니다. 고생 끝에 얻은 그 달콤한 성취감을 전 놓지 못할 거에요. 앞으로도 꾸준히 제 직업을 사랑하며 즐길 겁니다. 



으로도 인테리어를 사랑하고 즐길 수 있도록 이로 디자인은 자신들이 정해 놓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켜낼 생각이다. 그것은 바로 신뢰다. 김진규 대표는 인터뷰의 마지막까지 미래에도 이로 디자인을 믿고 자신의 주거와 매장을 맡길 수 있도록, 정직함을 잃지 않을 거라 거듭 약속했다.  


김진규 대표 =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저희의 중심은 '정직한 인테리어'입니다. 

공간의 변화를 꿈꾸는 고객의 기대를 어찌 져버리겠습니까. 당장의 편함과 이익을 위해 저희의 신뢰도와 자존감을 깎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전 항상 좋은 건 좋다, 나쁜 건 나쁘다 바로 이야기하며 고객의 선택 하나하나 장단점을 솔직히 분석해 드립니다. 

조금 번거로우면 어때요. 지금의 솔직함이 미래의 신뢰로 쌓일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거든요.

 
문제될 것 하나 없이 고객과 업체 모두 만족하는 솔직한 인테리어. 그게 바로 저희의 작업 컨셉이자 중심입니다. 

앞으로도 그 중심을 지켜내면서 머무르는 시간이 행복한 공간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집닥의 든든한 파트너스 이로디자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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